Skip to main content

2019년을 맞이하며

2018년이 지나고 2019년 황금돼지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종교를 가진 분들은 절, 성당, 혹은 교회 등을 방문해 2018년을 보내며 2019년을 맞는 결산과 새로운 다짐을 했을 것이고 종교가 없는 분이라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지난 해와 오는 해를 위한 마음의 정리와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바람들이 멋지게 성취되어지는 2019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인 흐름은 무엇보다도 실존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수 없이 많은 철학자들의 모든 이론들을 종합해 이를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하자면 단 두 단어로 표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 지금’ (hic et nunc)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단어는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중요성 뿐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어들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인간의 뇌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그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우리가 우리의 머리로 과거의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한 일을 기억해 내는 순간 이것들은 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지 않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기억과 함께 바로 여기서 지금 그에 따른 멋진 감정과 생각으로 즐거움을 다시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미래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고통스러운 일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그것 만으로, 그 생각이 구체화되건 그렇지 않건 관계없이 우리는 지금 그리고 바로 여기서 얼굴에 근심걱정을 표출하게 되고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이란 녀석은 현재에 존재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그 생각에 따른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 감정에 따라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연속되어지는 우리의 생각들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과거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현재의 나로 하여금 긍정적인 즐거움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행동이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결국은 미래의 나에게 긍정의 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란 동물은 묘하게도 과거를 떠올릴 때 많은 경우 긍정적인 사건들 보다는 부정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미래의 사건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에 마음과 생각을 두고 지내시는 분들은 우울에 그리고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지내시는 분들은 불안이나 공황 또는 부정적인 인간관계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향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이 미래의 것이 되었건 과거의 것이 되었건 긍정의 생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아니면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생각이 부정이냐 아니면 긍정이냐에 따라 여러분의 현재의 정신 건강도 그리고 여러분의 미래도 부정 혹은 긍정으로 결정난다는 것을 심각하게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마음과 2019년 멋진 성공의 결과를 원하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긍정의 생각이 항상 우리 자신을 감싸 돌도록 스스로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것이기에 우리의 생각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결국 우리가 어떤 우리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정신 건강이 결정된 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행복한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박나는 2019년되시길 기원합니다.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스트레스와 명절 2

그렇다면 정말로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 아마 외국으로의 탈출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의 젊은 가족들은 명절에 해야 할 의무와 같은 일들을 빠른 시간 안에 혹은 그 이전에 모두 끝내고 외국 여행으로 명절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부담이 있긴 하지만 여행 그 자체로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좋은 선택이며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명절 탈출의 방법은 아예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않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단절을 선택하여 명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원천부터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쓸쓸하긴 하겠지만 명절스트레스로 고통스러운 것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번째 방법은 밖으로의 탈출을 통한, 아래의 것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방법을 통한 명절스트레스 단절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과연 정말로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일까요? ​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집 앞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큰 길까지 나왔는데 마침 바로 앞에서 차사고가 났다. 저 멀리서부터 빨간색의 포르쉐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더니 급기야는 앞의 차를 들이 박은 것이다. 이를 본 A의 반응은 “저 미친 놈, 돈 많다고 좋은 차 타고 속도 자랑할려 지랄같이 달려오더니 결국 들이박았네… 미친. 아침부터 정말 재수없게시리…: A 옆에는 A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기 위해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반응은 “아이고, 큰 일날뻔했네, 그래도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왜 이렇게 두 사람의 반응은 다른 것일까요? 두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닌 똑 같은 사건을 보았는데 왜 한사람은 부정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은 감사의 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명절 때마다 명절증후...

Vancouver & Depression

밴 쿠버하면 천당 밑의  999 당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하다 .  나아가 밴쿠버는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손가락 세 개 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  하지만 밴쿠버란 도시엔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울이란 녀석이다 .  마치 밴쿠버의 봄과 여름의 아름다운 계절이 이에 이어지는 가을과 겨울의 비 오는 어두움의 계절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  간혹 밴쿠버에서 만나는 한국 분들 중엔 가을과 겨울의 비 오는 날이 좋아 이민을 왔다는 분들도 계시긴 하다 .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멋진 클래식 음악에 취해 따스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  하지만 상담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따스한 정취 이전에 우울로 인해 일어난 심각한 밴쿠버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뇌리에 떠올려진다 .  우울과 스트레스로 고생하던 유학생들의 자살 ,  자신의 우울로 인해 아이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여인의 이야기 등등 ...  하다못해 몇 년 전에는 우울로 고생하는 여인에게 자살을 권한 사람이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사건도 있었으니 .... © matthewhenry, 출처 Unsplash 많은 사람들이 우울을 그저 왔다가 가는 마음의 감기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이렇게 비유하기엔 우울은 너무도 심각한 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5% 가 일생에 한번 이상 우울을 경험하며 우울증 환자의 약  10% 가 자살 및 가족동반사망으로 그 생을 고한다고 한다 . 2017 년 한국의 우울증 진료인원은  68 만천 명으로 전체인구의  1.5% 라고 하니 이 통계치만 보더라도 그저 감기로 가볍게 넘기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것이 바로 우울증...

에스키모의 막대

이재준님이 쓴 <절대 긍정으로 산다>에서 소개된 <에스키모의 막대>는 화와 분노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 에스키모의 막대: 에스키모인들이 분노를 다루는 방법 ​ 에스키모는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면 그 때 되돌아선다. 그들은 되돌아설 때 바로 그 지점에 막대를 꽂아 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꽂아 둔 막대를 발견한다면 요즘 사는게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뜻이 된다. ​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얘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 때까지 가 보라. 그리고 그 곳에 막대를 꽂고 돌아오라. 슬픔과 분노로 어찌할 수 없을 때 막대를 꽂는 사람은 행복하다. 위로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게 도와주는 또 다른 내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참고 용서하는 것이 인격의 힘이다. 사람다움이란 자제력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 화를 이야기하자면서 에스키모가 분노를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전에 의하면 화병은 울화병의 준말로 화의 기운을 가진 분노가 쌓여 울(鬱)해진(답답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불과 같은 양태로 폭발하는 질환을 일컫는다. 따라서 한국인의 정서로 화는 분노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마음 안에 쌓이고 쌓인 분노가 불과 같이 올라오는 것이 화이기 때문이다. 결국 화란 분노가 표현되어진 형상이라 할 수 있다. ​ 분노의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분노의 대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표현하는 분노의 대상이 나를 화나게 한 그 사건이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그 내면을 살펴보면 화와 분노의 대상은 실은 그것이나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인 것을 우리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분노는 결국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