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님이 쓴 <절대 긍정으로 산다>에서 소개된 <에스키모의 막대>는 화와 분노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에스키모의 막대: 에스키모인들이 분노를 다루는 방법 에스키모는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면 그 때 되돌아선다. 그들은 되돌아설 때 바로 그 지점에 막대를 꽂아 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꽂아 둔 막대를 발견한다면 요즘 사는게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를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뜻이 된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얘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 때까지 가 보라. 그리고 그 곳에 막대를 꽂고 돌아오라. 슬픔과 분노로 어찌할 수 없을 때 막대를 꽂는 사람은 행복하다. 위로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게 도와주는 또 다른 내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참고 용서하는 것이 인격의 힘이다. 사람다움이란 자제력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화를 이야기하자면서 에스키모가 분노를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전에 의하면 화병은 울화병의 준말로 화의 기운을 가진 분노가 쌓여 울(鬱)해진(답답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불과 같은 양태로 폭발하는 질환을 일컫는다. 따라서 한국인의 정서로 화는 분노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마음 안에 쌓이고 쌓인 분노가 불과 같이 올라오는 것이 화이기 때문이다. 결국 화란 분노가 표현되어진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분노의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분노의 대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표현하는 분노의 대상이 나를 화나게 한 그 사건이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그 내면을 살펴보면 화와 분노의 대상은 실은 그것이나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인 것을 우리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분노는 결국 내...
그렇다면 정말로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아마 외국으로의 탈출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의 젊은 가족들은 명절에 해야 할 의무와 같은 일들을 빠른 시간 안에 혹은 그 이전에 모두 끝내고 외국 여행으로 명절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부담이 있긴 하지만 여행 그 자체로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좋은 선택이며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명절 탈출의 방법은 아예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않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단절을 선택하여 명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원천부터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쓸쓸하긴 하겠지만 명절스트레스로 고통스러운 것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번째 방법은 밖으로의 탈출을 통한, 아래의 것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방법을 통한 명절스트레스 단절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과연 정말로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일까요?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집 앞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큰 길까지 나왔는데 마침 바로 앞에서 차사고가 났다. 저 멀리서부터 빨간색의 포르쉐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더니 급기야는 앞의 차를 들이 박은 것이다. 이를 본 A의 반응은 “저 미친 놈, 돈 많다고 좋은 차 타고 속도 자랑할려 지랄같이 달려오더니 결국 들이박았네… 미친. 아침부터 정말 재수없게시리…: A 옆에는 A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기 위해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반응은 “아이고, 큰 일날뻔했네, 그래도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왜 이렇게 두 사람의 반응은 다른 것일까요? 두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닌 똑 같은 사건을 보았는데 왜 한사람은 부정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은 감사의 반응을 보인 것일까요? 명절 때마다 명절증후...